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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편리함과 잘 사귀는 법 –불편을 즐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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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전화에 저장된 번호에 익숙해져 막상 기억하고 있는 번호는 얼마 없다는 것을 깨달을 때가 있습니다.

내비게이션에 익숙해져, 안내가 없으면 목적지까지 갈 수 없을 때도 있지요.

삶이 편리해질수록, 거기에 너무 익숙해져 할 수 있는 것이 줄어든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 있습니다. 우리 삶이 빠른 속도로 ‘더욱 편리하고 쾌적하게’ 진보하는 속에서도, 때론 잠시 멈추워 나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도 중요합니다.

 

 

꿈의 도구

 

1985년, 어깨에 걸치고 다닐 수 있는 전화가 출시된 후 30년만에 인류의 절반 이상이 스마트폰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옛날 사람에게 스마트폰은 꿈의 도구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집 밖에서도 전화가 되고, 간단하게 메시지를 보낼 수 있습니다. 지하철 안에서 동영상을 볼 수 있으며 어느 곳에서나 쇼핑을 할 수도 있습니다. 은행 입출금은 덤이지요. 전화가 이 정도까지 편리해졌는데, 요즘은 ‘Wearable’, 즉 몸에 차거나 입는 것에 스마트폰의 기능을 탑재하는 단계로 더욱 발전하고 있습니다.

머지 않아, 아니 이미 휴대전화와 스마트폰은 우리 생활에 없어서는 안될 물건이 되고 있습니다. 도대체 인류의 생활은 어디까지 편리해지는걸까요?

 

 

편리함의 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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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 혁명 이후, ‘진보’라는 깃발 아래 인간은 다양한 ‘편리함’을 만들어냈습니다.

철도, 자동차, 비행기, 전화, 텔레비전, 컴퓨터, 인터넷 등, ‘편리’는 우리들에게 큰 이익을 가져다주고 생활을 윤택하게 바꿔주었습니다. 이미 이런 문명의 이기가 없는 생활은 상상이 불가능할 정도지요.

그러나 그 반면에, ‘편리함’의 대가로 잃어버린 것도 있습니다. 자가용을 갖게 된 사람은 잘 걷지 않게 됩니다. 옛 사람에 비해 현대인의 체력은 좀 떨어지지 않을까요?

컴퓨터로 글을 쓰게 되면 한자 같은 것은 손으로 직접 쓸 수 없게 되기도 합니다. 한 번 편리함을 손에 넣을 때마다 인간의 ‘야성’과 ‘본능’에 가까운 무언가가 조금씩 없어지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편리하기에 더 바빠진다

 

생활에 여유를 가져다주려했던 ‘편리함’에 휘둘릴 때도 있습니다. 그 예로 휴대폰이 있습니다. 장소에 관계없이 전화를 할 수 있지만 그 때문에 어디서나 전화를 받게 됩니다. 스마트폰이 있으면 어디서나 사람들과 이어져 있지만, 그렇기에 답장도 서둘러 하게 됩니다. 평소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지내는 시간이 줄어드는 것 같습니다. 동화 작가 미하일 엔데는 작품 ‘모모’안에서 ‘시간 도둑’이라는 캐릭터를 등장시켰습니다.

자신들을 시간 저축 은행이라고 소개하는 회색 남자들이 ‘시간을 저축하면 생명은 배가 된다’고 거짓말을 하며 사람들을 속여 시간을 빼앗습니다. 시간을 빼앗긴 사람들은 ‘바쁘다 바빠’라며 사람이 바뀐 것 마냥 부지런히 움직이며 돌아다닙니다. 여유롭게 살던 거리의 사람들은 시간 도둑에게 시간을 빼앗겨 여유를 잃어갑니다. 1973년에 발표된 작품이지만, 현대사회를 상징하는 이야기라 할 수 있습니다.

 

 

편리함을 택하는 시대

 

세계 굴지의 IT기업이 자동으로 운전하는 자동차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머지 않아 핸들에 손을 대지 않고도 목적지에 갈 수 있는 날이 올 것 같습니다. 또, 인터넷의 진화로 직접 정보를 찾지 않아도, 컴퓨터에게 원하는 정보를 받는 세상이 될 지도 모릅니다.

지금보다 더 빠른 고속 철도가 개통되면 통근이 가능한 지역이 더 넓어질 것이며, 로봇이 집 안에 들어와 가사와 노동을 하지 않아도 될지도 모릅니다.

편리해진다는 것은 결코 나쁜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반대로 무엇이든 ‘편리하기만 하면 된다’는 것도 아닙니다. 나에게 정말 필요한 ‘편리함’이 무엇인지, 잘 생각하고 선택해야 하는 시대가 온 것은 아닐까요?

 

 

불편함을 즐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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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편리함과 거리를 두고 불편함을 즐기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자면, 감사 인사를 메일이나 메시지가 아닌 손으로 써서 보내보는 것이지요.

가장 먼저 마음에 드는 봉투와 편지지를 사고 감사 인사를 쓴 후, 날씨가 좋다면 한 정거장 정도 미리 내려서 두 발로 걸어 편지를 우체통에 넣어 본다는 식으로 말이에요.

이처럼, 조금 수고스러운 것을 일부러 한다면 ‘편리함’과는 다른 윤택함을 맛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전, ‘기다린다는 것’의 소중함을 다룬 적이 있습니다. 기다린다는 것은 시간(=눈에 보이지 않는 큰 힘)에 맡긴다는 것이며, 우리 조상들의 삶은 자연히 그러했습니다. 멈출 줄 모르는 ‘진보’ 속에서, 때로는 잠시 멈춘 채 일부러 ‘불편’하게 있는 것도 현명한 선택일지 모릅니다.

 

여러분께서는 편리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의견과 소감을 들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