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함창명주의 명맥을 잇다 : 명주정원

상주는 경주와 함께 경상도의 어원이 된 유서 깊은 도시다. 낙동강 주변에 위치한 상주는 예로부터 삼백(三白)의 고장이라 불리며 쌀, 명주, 곶감의 산지로 널리 알려졌다. 특히 상주의 함창 지역은 신라시대부터 양잠업이 발달한 명주 산지로 전국 최대 규모의 명주 시장이 열리곤 했다. 해외에서 유입된 값싼 비단 제품들이 밀려드는 탓에 조금씩 그 자취를 감추고 있는 요즘, 함창명주의 전통을 지키고, 널리 알리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는 명주정원 이민주 대표를 만났다.
<국내산 명주가 아닌 국산 명주, 함창명주>
진주, 경주, 강원도 등 명주를 생산하는 지역이 아직 많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 중 상주산 명주는 예로부터 최고급에 속해왔다. 명주의 모든 생산 과정이 국내에서 이뤄지는 함창명주는 타지역의 명주와 달리 세탁이 가능하고, 뒤틀림이 현저히 적다.
상주에서는 ‘물꾸리(습식)’라고 하는 기술을 사용하여 명주를 생산한다. ‘물꾸리’란 물에 적신 명주실을 직조하는 기술이다. 날실의 위, 아래를 시실로 교차하여 명주를 짜는데, 축축한 실로 인해 명주의 조직이 촘촘해지고, 그대로 형태가 잡혀 수축이나 변형이 적은 특징을 갖고 있다. 이렇게 만들어지는 명주는 한 해 약 400필만 생산되고 있다.
상주는 기후와 물이 좋아 작물들의 작황이 좋다. 많은 사람들이 ‘곶감’의 도시로 알고 있지만, 쌀과 명주의 품질이 우수해 이 지역은 항상 풍요로웠다. 특히 실크나 염색은 물이 좋은 곳에서 많이 나는데, 낙동강을 통해 좋은 물이 흐르고 있어 명주를 생산하기 최적화된 지역이었다. 아울러 조선시대에는 경상감영이, 과거에는 경북도청이 있었던 만큼 경상도의 중심지 역할을 맡아 길이 발달되었고, 유통이 편해 산업은 계속해서 발전해 나갔다.
‘명주를 생산하기 좋은 지역이다 보니 산업화가 이뤄져 있었다. 두 집 중 한 집이 명주 산업에 종사할 정도로 많이 발달되었고, 잠업(蠶業)을 가르치는 잠업학교가 있을 만큼 시장이 활발하게 이뤄졌다. 당시 잠업은 우리나라 농촌에서 가장 중요한 산업 중 하나였고, 특히 상주에서는 누에고치에서 실을 뽑는 공장이 들어설 만큼 비중이 높았다. 그만큼 다른 지역에 비해 명주의 품질도 훨씬 우수했다.’
<쇠퇴해 가는 명주산업의 명맥을 이어가는 마음>
화학 섬유가 발전하면서 명주에 대한 사용률이 떨어지고, 90년대부터 중국산 생사와 원단이 유입되면서 명주산업은 그 자취를 감추고 있다. 특히 중국산 명주와 국내산 명주의 가격 차이가 없어졌고, 복잡한 과정을 거칠 만큼 생산과정이 힘든 함창명주의 입지는 더욱 좁아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마을 어르신들께서는 ‘명주를 하면 빌어먹는다’는 말씀들도 많이 하신다. 명주산업이 힘들어 자식들에게도 물려주고 싶지 않은 사업이 돼버린 것이다.
다행히 함창명주 생산 전통 방식을 복원하고, 이 문화가 유지되고자 상주에 내려와 명주로 상품을 제작하는 분들이 계신다. 함창명주를 100% 재현해 내는 것이 본인에게 주어진 임무라는 마음으로 작업에 임하신다. 현재 과거 생산되었던 함창명주의 70~80% 정도 구현하는 단계에 들어섰을 정도다. 유일하게 국산 명주를 생산하는 지역인 만큼 100% 국산 명주의 품질을 지키고, 신뢰를 쌓기 위해 인증 체계를 마련하고 있다.
‘명주베를 제작하기 위해 총 7가지 과정을 거치는 데 가장 중요한 과정을 ‘제사’라고 한다. 누에고치로부터 실을 뽑는 행위로 소량의 명주만 뽑는 경우를 제외하고 제사 과정을 거치는 곳은 상주 함창읍 외에 없다. 이 마을에서도 400필 정도의 양만 생산한다.
사실 명주를 만드는 과정이 너무 힘들어서 100% 국내산 명주는 소량 제작하고 유통을 활발하게 하지 않고 있다. 생산하는 명주들은 마을에서만 사용하다 보니 귀하게 여겨진다. 이러한 명주를 활용해 손누비 장인이신 어머님과 함께 경량 패딩을 만들거나 반려동물의 수의를 제작하는 등 우리의 전통 소재와 자연의 가치를 생활용품에 담아 명맥을 이어가고자 노력하고 있다.’
<한국의 캄 빌리지를 꿈꾸며 : 명주정원>
개인적으로 명주라는 소재를 너무 좋아하는데, 이렇게 좋은 소재를 모르는 분들이 너무 많았다. 명주를 알리기 위해 뭔가 했으면 좋겠다던 찰나에 짐 톰슨 (Jim Thompson)에 영감을 받고 이러한 활동들을 시작하게 됐다. 국제적으로 유명한 타이 실크를 지역 기반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확장하고,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모습을 보며 ‘우리 마을에도 이런 일들이 일어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명주정원은 F&B, 도서, 소품숍부터 지역과 관련된 워크숍 프로그램까지 다양한 것들을 즐길 수 있는 어른들의 놀이동산이다. 초기 단계에 짐 톰슨에 영감을 받았다면, 현재는 치앙마이 캄 빌리지(Kalm Village Chiangmai)와 같이 5천 원, 1만 원으로도 공예와 지역의 식재료를 즐길 수 있는 지역의 문화공간을 지향하고 있다. 이 문화공간을 방문하신 분들이 명주를 직접 보고, 느끼고, 실제 구매로 이뤄지면서 명주라는 지역으로 지역사회와 사람이 모이다 보면 ‘함창명주의 가치도 제대로 인정받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하게 된다.
‘현재 재정립 상태이긴 하지만 어르신들께서 조금씩 경쟁이 생기고, 자제분들도 불이 붙으면서 ‘명주 하나로 끝까지 파는 마을’이 되어가고 있다. 명주를 사기 위해 함창읍에 오고, 지역에 활기가 생기면 명주산업과 문화가 유지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단지 보여주기식 지원사업 대신 명주라는 자원으로 기반을 다지고, 모두가 자생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실질적인 삶에 도움을 줄 수 있는 환경이 갖춰졌으면 좋겠다. 이것저것 하기보다 명주라는 자원에 집중해 뾰족한 컨텐츠를 형성하는 일이 마을을 위한 일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