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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취향을 선물하는 내 곁의 레코드숍 : 노웨이브

취향(趣向)은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방향, 또는 그런 경향’을 뜻한다. 자아를 이루는 수많은 취향 중 우리는 희미하게나마 개인의 ‘음악적 취향’을 인지하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음악을 듣고, 흥얼거리며 심리적 안정감을 받는다. 명확한 취향을 알지 못해도 공간, 환경에 따라 어떤 음악을 좋아하는지 스스로 잘 알고 있다. 다만, 급변하는 유행 속에서 보다 깊이 있는 취향을 찾기 위해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알아가는 과정은 꽤나 어려운 일이다.

이런 우리의 곁에서 세상에 우리가 아직 알지 못하는 다양한 음악을 취향에 맞게 제안하는 레코드숍이 있다. 따뜻한 기운이 감도는 봄의 문턱에서 노웨이브를 만났다.

 

<21세기형 레코드숍 : 보다 다양한 플레이리스트를 제안하는 노웨이브레코드>

새로운 음악을 찾았을 때 느끼는 희열감. 이 희열감을 누군가에게 소개하는 일이 좋아 항상 레코드숍 주인을 꿈꿔왔다. 레코드숍이 호황기였던 그 시절 앨범 100만 장 판매가 어제 오늘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가면서 주위의 레코드숍은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대학 시절엔 강남의 명소 <타워 레코드>마저 문을 닫았다. 자연스럽게 레코드숍 주인이 되겠다는 꿈은 미뤄졌지만, 그래도 마음 한 켠에 항상 그 로망을 품고 살았다.

디자인 회사를 운영하며 다양한 기업을 위해 컨설팅만 하다 보니 정작 나를 위한 일들과는 거리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누군가에게 필요한 이미지나 텍스트, 영상은 제작할 수 있지만 나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내가 원하고 제일 잘하는 일은 어떤 것이며, 나를 위한 브랜드는 무엇일까? 10년이 지날 무렵 이런 생각이 불쑥 들었다. ‘더 늦기 전에 나를 위한 브랜드 하나쯤은 해야겠다.’ 그렇게 항상 마음속에 품고 있던 두 번째 꿈을 더 이상 미루지 말자는 무모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신문방송학과에 진학해 라디오 PD 혹은 DJ가 되어야지. 그러지 못할 경우, 나는 레코드숍 주인이 되어야겠다.’ 두 생각을 꿰는 하나의 맥락은 바로 ‘음악’이다. 음악을 듣는 것과 소개하는 행위 모두 내가 바라던 일들이었다. 전자처럼 되었으면 참 좋았겠지만, 원하는 과에 진학하지 못했고 바라던 꿈 또한 멀어졌다. 그래도 음악에 대한 호기심과 열정은 가득 넘쳐 다양한 음악을 듣고 자라왔다. 이러한 DNA가 충만해 후자라도 해야 하는데, 그 길이 쉽지만은 않았다.

 

 

노웨이브의 시작은 음반을 소개하는 온라인 레코드숍이다. 우리는 ‘이 공간에서 정기 결제를 하면 매월 한 장씩 당신의 집 앞으로 바이닐 레코드 한 장을 보내주겠다.’ 라는 사업 모델을 갖고 시작했다. 피자박스처럼 생긴 레코드 상자를 장르에 맞춰 디자인하고, 본인이 구독하는 음악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게끔 구분했다. 그리고 상자 안에 LP를 정성스레 넣어 본격적으로 정기 구독 서비스를 시작했다. A부터 Z까지 있는 레코드숍이 아닌, 취향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레코드숍인 것이다.

 

취향이 확실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를 아는 사람들에겐 도움이 필요 없다. 추천하지 않아도 본인이 듣고 싶은 음악을 들으면 되고, 간혹 심심하거나 다른 것을 찾고 싶을 때 우리가 옆에 있어 주면 된다. 반면, 자신의 취향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취향 찾기’란 어려운 일일 수 있다. 노웨이브는 이런 분들에게 음악적인 취향을 발견할 수 있게끔 도와주고 싶은 레코드숍이 되고 싶었다. 상대방이 원하는 컨셉에 대해 정성을 다해 앨범 소개 글을 적고, LP를 준비해 포장하고, 배송하는 과정이 내겐 굉장히 의미가 깊었다.

 

 

<만지고, 보고, 듣고 : 플레이리스트 가이드북의 탄생>

노웨이브의 명칭은 ‘유행이나 흐름에 타지 않는 음악들을 소개하겠다’는 철학에서 시작됐다. ‘no wave’가 아닌 ‘novvave’로 표기하고 있는데, ‘W’ 자체가 ‘V’와 ‘V’가 만난 일종의 시그널 같고, 파동과 흐름을 만드는 형태가 재미있었다. 다양한 음악을 소개하며 ‘이런 음악도 한 번 들어봤으면 좋겠어’라는 자세를 취하고, 얘기할 수 있는 브랜드고 되고 싶었다. 돌이켜보면 어린 시절부터 음악에 있어서 항상 주변 사람들에게 이러한 자세로 대해왔던 것 같다. 이것이 바로 노웨이브의 컨셉이다.

 

온라인 레코드숍을 이어가던 중 레코드에 대한 확고한 신념 아래 ‘노웨이브’의 컨셉을 대변할 수 있는 모델이 ‘출판’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음악을 손으로 만지고, 활자로 읽으면서 듣기까지 할 수 있는 ‘책’이라는 포맷은 노웨이브의 방향과 철학을 전달하는데 제격이었다.

 

 

그러던 찰나 ‘도쿄다반사’ 김동욱 씨를 만나 음감회 등 다양한 이벤트를 진행하며 많은 이들과 음악적 교류를 이루고, 작지만 내부 편집팀을 꾸려 ‘LIGHTZINE’ 이라는 온라인 콘텐츠를 정기적으로 발신했다. 이때부터 노웨이브 외 다수의 큐레이터와 음악 큐레이션 세계를 만들기 시작하며 방대한 자료들이 아카이빙 되었다. 유행을 벗어나 다양한 취향의 음악들을 컨텐츠로 소개하고, 제안하고, 선곡하는 흐름 속에서 이러한 네트워킹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그렇게 동욱 씨를 통해 유키 야마모토 씨의 ‘Quiet Corner’라는 책과 연결되고, 국내외 아티스트 및 크레이터가 참여한 ‘Quiet Corner’를 출간하게 되었다. 그렇게 지금까지 7권의 서적을 출간했고, 지금도 다양한 취향을 제안하는 출판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레코드숍이 출판한다는 것은 결국 내가 하고 싶었던 것과 가장 근접한 포맷이라는 생각까지 닿게 되어 믿음이 생겼다. 이 포맷의 핵심은 책 속에 선곡표와 플레이리스트를 다양하게 만들어 소개하는 것이다. QR코드를 전부 디자인해서 테마마다 넣고, ‘좋은 오디오 필요 없이 당신의 이어폰으로, 늘 이용하는 플랫폼 안에서 책 안에 있는 음악들을 경험할 수 있다.’ 며 취향을 제안한다. 오프라인과 디지털의 유연한 연결성과 앨범이 아닌 곡과 곡 사이 테마별 선곡표 구성 등의 부분들이 잘 전달된 것 같다.

 

 

<좋은 음악, 그리고 좋은 취향>

좋은 음악은 들을 때마다 다르게 들린다. 기분과 상황에 따라 같은 음악이지만 다양하게 해석된다. 특히 살아있는 좋은 음악(生音樂)에서 이러한 느낌을 많이 받는다. 모든 연주를 직접 하며 각 파트에 자신의 감정을 담고, 앨범 한 장을 만들기 위해 몇 명의 아티스트 인적 자원이 함께 머리를 맞닿는데 이들의 기분과 취향, 감정이 앨범에 들어있다 보니 깊어질 수밖에 없다. 반면, 어떤 음악은 듣다 보면 쉽게 피로해지고, 그만큼 쉽게 해석될 때도 있다. 이러한 이유 중 하나로 요즘의 음악이 ‘스타일’로서의 음악으로 가고 있어서가 아닐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비단 음악뿐만 아니라 모든 문화가 스타일로 귀결되고 있는 것 같다. ‘OO스타일’이 너무 익숙할 만큼 모든 것들은 ‘스타일’이라는 세글자로 수렴되고, 간편하게 인식되고 있다. 음악을 나누는 ‘장르’도 이제는 ‘스타일’이 더욱 익숙하다. 돌이켜보면, 과거에는 ‘OO스타일’이 아닌 ‘OO 1집’, ‘XX2집’과 같이 앨범 단위로 특정 지었다. 친구들과 음악 이야기를 나눌 때도 ‘OO 2집의 몇 번 트랙’이라고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한 장의 앨범에는 순서가 있고, 모든 곡을 관통하는 스토리가 담겨 곡마다 각기 다른 정체성을 지니고 있었다. 또한 곡과 곡 사이에 발생하는 공백이나 간극으로 호흡하며 앨범 컨셉이 잘 전달될 수 있도록 치밀하게 계산해 수록한 것이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스타일’이라는 단어 아래 폴더링 해놓은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들 때가 있다.

 

 

사람은 보통 고등학교 시절까지 들었던 음악을 평생 듣는다고 한다. 그 시절의 감정과 기억이 결국 취향의 바탕이 되는 셈이다. 어린 시절, 운 좋게도 그때 접한 음악들이 스타일을 넘어 스토리를 담고 있는 것들이 많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음악들을 자연스럽게 듣고 자랐다는 건 정말 큰 복이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취향이란 나와 다른 것들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일종의 ‘수용의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마음 안에 나를 기분 좋게 해주는 순간의 선택들이 쌓이다 보면 결국 ‘좋은 취향’이 될 것이다. 이것은 ‘좋은 삶(Good Life)’과도 연결되어 있는 감각이지 않을까? 노웨이브는 그런 순간들을 위해 보다 다양한 음악적 취향을 조심스럽고 은은하게 건네는 존재로 남아있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