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기다림에 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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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토르트 카레가 처음 출시된 때는 사회 전반적으로 시간이 천천히 흐르던 시절이었습니다. 카레가 완성되는 3분이라는 속도는 그 시대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습니다. 한편 이러한 속도에 익숙해질수록, 우리는 더욱 빠른 속도를 목표로 살아가며 시간을 오래 들이거나 기다리는 것을 점점 잊어버리게 된 듯합니다.
과정의 즐거움
요즘 사람들은 ‘효율’이라는 단어에 사로잡혀 빠른 것을 미덕으로 여기고 앞으로 달려왔습니다. 시간을 들여 만든 ‘어머니의 맛’은 비닐을 반으로 가르면 먹을 수 있는 ‘봉투의 맛’으로, 손으로 정성껏 만든 주먹밥은 삼각형 모양의 ‘틀에서 빼낸 밥’으로 바뀌었습니다. 어느샌가 그것이 당연해졌습니다. 이런 세상 속에서 사라진 것은 시간을 들이는 과정입니다. 귀찮은 것을 최대한 줄이고, 짧은 시간 내에 결과만 나오면 된다는 생각이 그렇게 만든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반대로 말하면, 만드는 과정의 즐거움과 완성까지 두근거리며 기다렸던 시간의 소중함을 놓치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시간에서 빌리는 힘
시간을 들이는 것과 손이 많이 가는 것은 반드시 같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한 예로, 카레나 국, 양념한 고기는 같은 것이라도 만든 날보다 하룻밤 재워놓은 것이 더욱 맛있습니다. 시간을 들인다는 것은 기다린다는 것과 같습니다. 다르게 생각하면 ‘시간의 힘’을 빌리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발효 음식이라는 훌륭한 음식문화를 가지고 있는 우리 조상들은 천천히 시간을 들였을 때 음식에서 나오는 깊은 맛을 알고 있었습니다.
최근에는 ‘숙성요리’라고 해서 음식의 맛을 더욱 끌어내기 위해 음식을 하룻밤 동안 재워놓는 방법이 주목받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만들자마자 먹는 것이 가장 맛있는 것이라 여겨졌던 초밥이나 국수 등의 다양한 소재까지 영역이 넓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일전에 소개했던 말린 채소 또한 시간이 맛을 더욱 이끌어내는 예 중 하나입니다. 오랫동안 햇빛을 맞는 과정에서 채소에 포함된 수분이 증발하여 소재 고유의 맛이 더욱 깊어집니다. 말린 버섯이나 무채처럼 건조를 통해 영양이 더욱 풍부해지는 채소도 있습니다. 단순히 수분을 없애기 위해서는 전자레인지로 돌리면 그만이지만 채소 고유의 맛과 영양소를 풍부하게 하기 위해서는 ‘시간’의 마법이 필요합니다.
마찬가지로, 청소 또한 시간의 힘을 빌립니다. 베이킹 소다와 구연산을 사용한 네츄럴 클리닝은 알칼리와 산이 중화하는 과정에서 오염된 부분을 떨어뜨리는 방식으로, 베이킹 소다와 구연산을 뿌리고 얼마 정도 시간이 지나면 신기하게도 더러운 곳이 깨끗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린이의 시간
육아는 ‘기다림’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부모의 역할은 기다려 주는 것 이라고도 합니다만, 반대로 부모가 어린이에게 제일 많이 하는 말이 ‘빨리빨리’라고 합니다. 어른이 보기에 어린이는 무슨 일을 하더라도 느릿느릿하기 때문에 재촉하는 부모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어렸을 때를 생각해보세요. 하루 종일 시간이나 일에 쫓기지 않고 느긋하게 놀았던 기억은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서 보석처럼 빛나고 있을 것입니다. 느긋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마음껏 놀 수 있는 것은 어린 시절에만 주어지는 특권입니다. 마음껏 노는 과정 속에서 하나하나 익힌 것이야말로 앞으로 살아가는 과정에서 쓸 수 있는 진짜 힘이 되지 않을까요? 아이의 힘을 믿고, 개입하지 않으며 지켜보는 ‘기다림’. 결코 간단하지 않은 것입니다만 기다리는 것을 통해 부모도 조급한 마음을 내려놓고 육아를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생길 것입니다.
‘기다림’이란 어떤 문제를 자신의 힘으로 해결하는 것이 아닌, 시간(눈에 보이지 않는 커다란 힘)에 모든 것을 맡기는 것입니다. 물론, 요즘처럼 바쁜 시대에서 모든 일에 시간을 들이고 기다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지만 생각을 할 때, 일부러라도 시간을 들여보세요. 시간을 들여 천천히 생각하고 적당한 때를 기다리는 것이란, 바쁘게 돌아가는 요즘 시대의 흐름에서 한 발짝 물러나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를 확인하고, 진정한 자기 자신을 되찾는 기회가 될지도 모르니까요.
시간의 흐름을 즐기며 기다리는 것에 대한 여러분의 의견을 들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