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정상 600m 지하에 있는 동굴에서 솟아나는 물은 한 방울, 한 방울 수십년에 걸쳐 바위를 통과했습니다.
無印良品의 스킨케어 용품※은 깊은 동굴 속에서 채취한 천연수로 만들었습니다.
*클렌징/세안폼 제외
고도 1,147m의 이 산에는 한 때 철광석을 채취했던 흔적이 온데간데 없고 자연의 모습만 남아있습니다.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윈시림이 우거져있으며, 인공물은 거의 없습니다. 겨울이 끝날 무렵, 눈 덮인 이 곳을 걷다 보니 여기저기에 실개천이 흐르고 야생 사슴이 이 쪽을 신기한 듯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이 땅에 내린 비와 눈이 녹은 물은 석회암, 자철광, 화강암 등의 지층을 수 십년에 걸쳐 통과하며 천천히 여과됩니다.
눈 덮인 겨울산 주변
눈 녹은 물이 흐르는 맑은 시냇물
이 산에는 철광석을 채굴하기 위한 갱도가 몇 개나 뚫려 있습니다.
물을 퍼 올리기 위한 갱도의 입구는 산봉우리 밑 600m에 있습니다. 입구에서 트럭을 타고 약 20분, 3km 정도 달려 도착한 곳은 깊고 조용한 산의 내부였습니다. 그 곳의 암반 사이에서는 조용히 끊이지 않고 물이 솟아나고 있었습니다. 손으로 물을 떠 마시니 몸에 바로 흡수되는 듯한 부드러운 맛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입자가 매우 작고, 미네랄도 매우 적은 초연수. pH 지수는 눈물과 비슷한 약알칼리성이기 때문에 피부에도 잘 흡수가 됩니다.
실제로 물을 채취할 때는, 채취장의 암석에 스테인리스 스틸 파이프를 꽂고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압력만으로 물을 퍼 올립니다. 채취한 물은 125도에서 9초간 열처리를 한 후, 공기에 닿지 않게 탱크에 넣어 스킨케어용품 제조장으로 옮깁니다.
화장수나 로션 성분에 가장 많이 배합되고, 스킨케어의 베이스가 되는 것은 물. 무인양품은 물의 질에 대하여 깊이 생각했습니다. 연구 끝에 발견한 것은 동굴에서 흐르는 천연수입니다. 이 물을 사용하여 촉촉함이 가득한 스킨케어 제품을 만들었습니다.
아낌없이 사용했습니다
비와 눈이 산에 흡수되어 수년에 걸쳐 두꺼운 암반을 천천히 통과한 끝에 분자가 작고 불순물이 적은, 마셨을 때에도 맛있는 물이 되었습니다. 가열과 살균을 할 필요가 없는 순수한 천연수는 미네랄 이온이 거의 포함되지 않은 부드러운 물입니다. 이러한 물을 스킨케어의 원료로 아낌 없이 사용하는 일은 화장품으로서는 매우 드문 일입니다. 아침과 저녁의 스킨케어에 촉촉함 가득히 사용해보세요.
포장보다 상품에 집중했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을 꾸미기보다는 상품 본래의 색이나 모양 그대로를 소중히 생각했기에 불필요한 포장을 하지 않아 지구 환경까지 생각했습니다.
무인양품의 스킨케어 컨셉
몸 속의 물과 같은 약알칼리성
물이 피부에 쉽게 흡수되는 것을 측정하는 또 하나의 기준은 ph지수입니다. 예를 들어 눈물같은 체액은 ph9 전후이며, 동굴의 천연수도 몸 속의 물과 거의 같은 ph8~8.9의 약알칼리성입니다.
무인양품의 초음파 아로마 디퓨저는 초음파 진동으로 향기를 분산시켜 가열에 의한 향의 변질 없이 오일 본래의 자연스러운 향을 즐길 수 있도록 도와주는 아이템입니다.
아로마 향기, 촉촉한 미스트와 더불어 부드러운 빛으로 편안하고 부드러운 공간을 만들어줍니다.
Refreshing Time
기분을 전환하고 싶을 때
Working Time
집중해서 무언가를 하고 싶을 때
Sleeping Time
잠자는 동안에
Relxing Time
차분하게 쉬고 싶을 때
Gift
소중한 사람에게 선물할 때
아로마 디퓨저는 여러 장소에서 다양한 용도로 사용됩니다. 다양한 종류의 아로마 오일을 섞어 자신만의 향을 만들수도 있습니다.
푹신 소파, 아로마 디퓨저를 함께 사용하다
몸을 편안하게 감싸주는 푹신 소파에서 원하는 자세로, 향과 빛을 은은하게 퍼뜨려주는 아로마 디퓨저로 원하는 향과 함께 휴식을 취할 수 있습니다.
낮잠을 잘 때
엎드려 쉴 때
넥쿠션과 아로마디퓨저를 함께 사용해 휴식을 취할 때
음악을 들으며 릴렉스할 때
창을 열고, 바람을 느낄 때
푹신 소파가 개선되었습니다.
휴식하는 자세에 따라 자유롭게 형태가 변형되어 몸을 감싸주는 소파는 최근 늘어지지 않도록 개선한 니트 원단을 본체와 커버에 사용해, 기존 제품보다 더욱 튼튼하개 개량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앉는 방향에 따라 더욱 확실하게 몸을 지지해줄 뿐 아니라 푹신함도 더해졌습니다. 또한 커버가 오염되었을 경우에도 집에서 간편히 세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드라이클리닝은 석유계만 사용 가능합니다.)
무인양품은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대로’ 자유로운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앞으로도 다양한 제안을 하고자 합니다. 여러분께서는 언제, 어떻게 푹신 소파를 사용하고 싶으신가요? 자유롭게 이야기해주세요.
모차르트의 일생을 다룬 영화 ‘아마데우스’를 프라하에서 촬영했다는 사실을 익히 아시는 분도 계실거라 생각합니다.
「아마데우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로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밀로스 포만 감독은 체코 슬로바키아 태생으로, 프라하 국립 연극영화 학교에서 공부했습니다. 원래 영화의 무대는 비엔나이지만, 프라하의 거리는 모차르트가 태어난 18세기 후반의 비엔나와 같은 분위기를 가지고 있기에 포만 감독은 자신이 잘 알고 있는 거리, 프라하에서 아마데우스를 촬영했습니다.
앤티크 악기점
영화 주인공인 모차르트는 잘츠부르크에서 태어나 비엔나에서 비극적인 생을 끝냈습니다. 빈에서는 그가 어디에 묻혔는지 알 수 없을 정도의 대접을 받았습니다만, 그의 죽음을 알게 된 프라하 시민은 친구를 잃은 것처럼 슬퍼하며 성대한 미사를 열었습니다. 생전, 불우했던 모차르트를 따뜻하게 맞이하며 지원했던 이들도 프라하 귀족들이었습니다. 또한 보헤미안 음악을 세계에 널리 알린 작곡가 드보르작, 체코 민요를 도입해 슬라브적인 작품을 많이 남긴 「나의 조국」의 작곡가 스메타나 등을 사랑하고 지원한 이들 또한 프라하의 시민들이었습니다. 드보르작이 임종을 맞이한 후에는 많은 시민들이 모차르트의 레퀴엠을 연주하며 추모를 할 정도였습니다. 프라하 시민들이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과 음악가에 대한 이해, 존경을 알 수 있는 에피소드가 아닐까 싶습니다.
유리로 제작된 인형 오케스트라
클래식은 일상음악
BGM15의 제작을 위해 프라하를 조사하고 있던 도중 알게 된 것은 프라하 시민들에게 음악은 곧 클래식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음악가와 작품을 사랑하고 지원하는 뛰어난 감수성을 가졌으며, 음악은 함께 즐기고 만드는 것이라는 그들의 생각을 강하게 느꼈습니다. 음악이 생활의 중요한 요소로 자리잡고 있는 곳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동양에 서양음악이 도입되어 퍼진지는 불과 100년 밖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클래식은 외국 문물이기에 받아들이는 형태로 접하는 것이 일반적이 될 수 도 있습니다. 하지만 요즘 동양에서도 클래식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나가는 시대로 변하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자스타프카 마을의 작은 교회
이 교회에는 종교화와 함께 악보가 장식되어 있습니다.
프라하로부터 남쪽으로 200km 정도 떨어진 자스타프카 마을의 작은 교회 내부 벽면에는 종교화와 함께 걸려 있는 찬송가의 악보.
Galerie Rudolfinum(예술가의 집)홀
Galerie Rudolfinum(예술가의 집) 콘서트 홀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시대의 ‘프라하 국민 가극장 부속 오케스트라’가 전신으로,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체코·필하모닉의 본고장입니다. 프라하의 봄 음악제로도 유명한 장소로 뛰어난 연주가들이 많이 배출되는 학교 같은 곳이기도 합니다.
내부 스테이지
체코·바로크
풍요로운 음악 역사를 가지고 있는 프라하의 꾸밈없는 모습을 BGM으로 수록하고 싶어졌습니다. 이를 위해 바로크까지 거슬러 올라가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사운드 프로듀서 이지 로한 씨에게 상담해 보니, 그 또한 크게 공감해주었습니다. 하지만 바로크 시대의 체코는 1620년의 「백산 전쟁」에서 신교회에 패배해, 많은 체코 음악가가 국외로 떠나버렸기에 체코 음악 역사의 공백기에 해당합니다. 하지만, 이 시기에 미후나, 베츠바노프스키, 젤렌카, 세르노호르스키, 브릭시 등 뛰어난 체코 음악가가 많이 나왔다는 것을 이지 씨가 알려주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체코 시민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J.D. 젤렌카(JAN DISMAS ZELENKA)와 A.V.미후나(Adam Vaclav MICHNA)가 바로 이 시기의 인물입니다. 이지 씨와 상의 끝에, BGM15에는 이 위대한 체코·바로크 시대의 작곡가 두 인물을 중심으로 작품을 다루기로 하였습니다.
스트라호프 수도원 「학문의 사이」도서관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이 곳에 비치된 서적에서 작품을 고른 것은 아닙니다.
이를 시작으로, 도서관에서 체코·바로크 시대의 음악 중 체코스러운 뛰어난 악보를 찾아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체코 필하모니, 체코필하모닉 콜레기움 등 수많은 일류 악단과 앙상블에게 작품을 제공하고 있는 작곡가이자 편곡가 토마스 레이 씨에게 편곡을 부탁했습니다. 또한 현재 프라하 예술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작곡가, 지휘자, 클라리넷 주자로서 활약하는 체코·바로크의 권위자, 루카스 마토슈크(Lukáš Matousek)씨에게 감수와 사운드 체크를 부탁하며 프로젝트를 진행시켰습니다.
음악의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들
악보와 연주를 확인하는 루카스 마토슈크씨(왼쪽)
이번에 체코에서는 필자가 일본에서 느꼈던 것 이상의 체험을 했습니다. 그것은 프라하 거리 그 자체가 콘서트홀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거리 곳곳에서 클래식음악(Western Music)이 이 흘러나오고 있었으며, 이는 역사와 함께 지금까지 살아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번 녹음에 모인 연주가 모두와 편곡가, 감수가 모든 사람들이 음악적으로 정말 뛰어나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지만, 제가 일본에서 느꼈던 음악가에 대한 인상은 음악가가 하나의 ‘직업’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음악가다. 이제 슬슬 연주를 해 볼까?’ 같은 인상이었습니다만, 체코의 음악가들은 힘을 주거나 꾸밈 없이, 자연스럽게 몸 안의 음악이 호흡처럼 흘러나오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었습니다. 스튜디오 작업도 일상의 시간들이 흐르는 듯한 분위기 속에서 차례로 아름다운 선율이 녹음되었습니다. 그것은 스튜디오 작업이라기 보다는 숲 속에서 바람에 실려온 음률을 수채화로 스케치 하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레코딩 중에는 이지씨와 루카스씨가 한 곡을 수록 할 때마다 “어때요?” 하는 듯한 눈으로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저는 체코의 풍경이 그대로 음으로 표현되고 있는, 상상 이상의 음악의 풍요로움에 그저 미소를 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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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슬라이드 쇼는 MUJI BGM을 소개하기 위해 주식회사 양품기획이 제작·공개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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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초네란 이탈리아어로 「노래」 또는 「가요」를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나폴리의 칸초네는 칸초네·나폴리타나라고 불리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가요이며, 그 역사는 기원전 로마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렇게 오래된 역사를 가진 칸초네 나폴리타나가 어떻게 나폴리에서 생겨난 것인지, 궁금증을 불러일으킵니다.
구시가지
나폴리에서 생긴 이유 중 하나는 나폴리의 독특한 구조에 있는 것 같습니다. 나폴리의 구시가지에는 그리스 시대에 만들어진 길이 두 갈래로 뻗어 있으며, 그 사이를 연결하는 작은 골목이 만들어져있습니다. 이 곳을 스하카나폴리라고 부릅니다. 이 좁은 골목에서 행상이라는 직업이 만들어졌다 합니다. 그들은 일용품부터 식자재까지 다양한 물건을 판매하며 걸어 다녔다고 합니다. 더 흥미로운 것은 이 행상인들의 목소리가 좋을수록 장사가 번창했다고 합니다.
두 번째 이유는 나폴리가 기원전부터 음악제가 개최될 만큼 음악이 번성했던 마을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마을인 만큼, 자연스럽게 행상인들의 목소리에도 가락이 많이 묻어났던 것은 아닐까요? 낙천적인 그들의 생활 속에서 노래가 탄생할 수 있는 배경이 만들어진 것은 아닐까요?
마을을 걸어보니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마을의 세탁물
나폴리를 걷다 보면, 다다르는 곳마다 세탁물이 널려있습니다. 저렴하고 맛있는 레스토랑이나 에스프레소를 마시면서 작은 디저트를 집어 먹는 스탠드식 카페가 곳곳에 있어 단골 손님들이 자주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마을 전체가 매우 서민적이면서도 상업무역항으로 번영했던 나폴리는 예로부터 변함없이 이런 모습의 마을이었을거라는 생각을 하며 당시를 상상해 보았습니다.
커피, 스탠드식의 디저트
나폴리에서는 예로부터 노상 연주가 많았으며, 이름도 없는 가수가 음악제에 나올 무렵엔 모두가 그 노래를 부를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상업항으로 번창하며 풍부한 음식, 온난한 지역으로 그리스, 로마와 직결된 관계를 가지며 서민들이 풍족해지는 마을 구조를 가지게 되고 밝고 상냥한 기질 등과 더불어 세계에 으뜸가는 대중가요 칸초네 나폴레타나를 낳은 것이 아닐까 하고 마을을 걸으며 생각해보았습니다.
나폴리에서 바라본 베수비오 화산
「푸니쿨리 푸니클라(Funiculì funiculà)」라는 나폴리 노래를 아시나요? 베수비오 산의 정상까지 케이블카가 1880년에 부설되고, 이 선전을 위해 일반인들에게 공모를 통해 만든 노래가 바로 이 곡입니다. 지금으로부터 130년도 전에 선전을 위한 노래를 공개 모집한 사실을 보면 당시부터 얼마나 음악이 발달한 땅이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1860년 이탈리아 통일 후, 나폴리는 상업도시로서의 발전과 동시에 음악문화 거점으로서 많은 작곡가, 작사가를 배출하며 「돌아오라 소렌토에」, 「오 솔레미오」 등 수많은 명곡을 남겼습니다. 그 외에도 오래된 곡으로는 산타루치아 해안을 노래한 「산타루치아」 등도 유명합니다.
산타 루치아 델 오보 성에서 바라본 노을입니다.
MUJI BGM 9 수록
리카르도 바즈로
이런 칸초네 나폴리타나를 잘 이해하며 나폴리의 지역 뮤지션에서도 매우 왕성한 리카르도 바즈로 씨가 사운드 프로듀서로 시칠리아부터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리카르도는 BGM3 시칠리아의 수록 시에 치코의 오른팔로서 활동한 뮤지션입니다. 이번에는 칸초네 나폴리타나다운 나폴리의 대중음악을 편집해주었습니다.
스튜디오 콘솔 룸
역시나 훌륭한 스튜디오가 있었습니다. 나폴리의 인구는 약 100만명으로 센다이와 비슷한 규모라고 합니다. 해외의 도시를 돌아보며 느끼는 것이지만, 인구에 비해 탄탄한 음악 녹음 스튜디오가 마련되어 있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그만큼 많은 뮤지션과 그것을 듣는 음악 애호가들이 있다는 것이 부럽기만 합니다. 두터운 음악 애호층과 그 다양성은 음악 역사의 길이의 차이인가 라고 생각할 때도 자주 있습니다.
악기를 조율하고 있습니다.
OK 하며 즐거워하는 프랑코 본츠오
자켓 촬영 광경, 조금은 경직되어 보이는 핏트리오 카탈루디
보컬로 참여해 준 19살의 신예 쉴라 카페츠토
뮤지션들이 스튜디오 밖에서도 쾌활한 것은 어떤 나라에서도 마찬가지 이지만, 이번의 나폴리는 뮤지션들의 싹싹함에 놀랐습니다. 음악가는 무언가 자신이 음악가라는 특별한 의식이 나타나기 마련이지만, 나폴리의 뮤지션들은 어깨에 전혀 힘이 들어가지 않은 듯 했습니다. 스태프에게 커피를 나눠주거나 스태프들을 위로하며 장난을 걸며 참가하며 뮤지션도 스태프도, 모두가 동료라는 느낌을 가지게 합니다. 물론 스튜디오에서는 자신의 음악을 표현하는 성실한 자세는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이지만, 이 차이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칸초네 나폴리타나의 민중과 함께 발전해온 역사와 그 분야에서 인정 받고 있는 자신감, 사람들이 대중음악을 소중히 여기고 있다는 문화 등이 드러나는 것은 아닐까요? 쉴라에게 물어보니, 왜 그런 것을 묻느냐는 얼굴을 하며 「나폴리 사람들은 모두 음악을 좋아하고, 나는 단지 노래를 잘하고 악기를 잘 다룰 뿐이에요. 그래서 기를 쓸 필요는 없지요.」라고 답을 받는 듯 했습니다. 음악이 생활 속에 공기처럼 자리 잡고 있는 나폴리, 또 하나의 살고 싶은 마을이 늘어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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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슬라이드 쇼는 MUJI BGM을 소개하기 위해 주식회사 양품기획이 제작·공개한 것입니다. 저작권은 (주)양품계획에 속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즐기는 용도 외에 사용 및 배포는 금지합니다.